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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목회의

아름다운 이야기들

Beautiful Stories of

A Koran-American Pastor

안녕하십니까?

1960년부터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을 따르면서, 주님을 실망시킨 일은 너무나도 많지만, 한 번도 배신한 적은 없었습니다. 8년간의 가정 교회와 15년간의 담임목사로 짧은 목회였지만, 진정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했으며, 부족한 저를 불러서 멤피스 한인 교회를 개척하게 하시고,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의 간섭이 있었습니다. 저 개인의 삶에 대해서 약간 말씀을 드리는 것이 좋을  것같아 몇 자 적어 봅니다.

저는 1972년에 University of Tennessee로 미국 첫 유학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물질적으로 넉넉지 못한 시대라, 미국에서도 유학 생활을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가족 (부인과 아들)이 왔기에, 가족들의 생계유지와 학업을 병행해야 했습니다. 낮으로는 병원에서, 또 직장 (FedEx)에서 일을 하면서 꾸준히 대학원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1985년에 기다리던 (실은 부모님이 더욱) 박사학위를 University of Memphis에서 받았습니다. 신학은 1973년도 부터 저녁으로 한 두 과목 짬짬이 공부를 했습니다. 목회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한국의 경험(Youth For Christ) 같이 좋은 청소년 지도 교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좋은 목사님 한분을 만났습니다. 한국 모 신학대학원에서 미국으로 유학 오신 교수님분과 같이 저희 집에서 성경공부/가정교회를 1986년부터 시작했습니다. 작게는 2-3명, 많기로는 50까지 모이는 좋은 모임 이였습니다. 그 때 한 목사님부부가 영적으로 갈급하여 모임에 나오시게 되었습니다. 미국 교회를 나가던 중, 그분에게 작은 답례로 그분의 교회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학생 목사님께서 공부를 마치시고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귀국 당시에는 많은 교인들이 다 떨어져 나가고, 4가정이 남았습니다.  그때 제가 재무를 보고 있어서, 남은 재정은 어려운 자선단체에 기증을 하고, 교회 문을 닫자고 논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자매님이 말씀하시길, 저희는 갈 곳이 없어요. 미국 교회에서는 설교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한국 교회에서는 국제결혼 했다고 우리를 괄시해요. 그러니, 토요일 마다 가정 교회를 인도해 오신 김 박사님이 이 교회도 인도하면 어떻겠습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고 할 수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해서 저의 가슴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에게 이 부담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답은 냉담했습니다.  세상사람 다 목회자가 되어도 당신만은 목회자가 될 수가 없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부담을 접을 수도 없었습니다. 또한 이민 목회는 남자 혼자서 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몇 달 후에 아내의 기도가 끝난 모양입니다.  목회를 하려면, 자비량으로 해보라고 말했습니다.  이민 교회마다, 재정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4가정으로 시작한 목회 길이, 생각보다는 쉽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저에게 열정은 많이 있었으나, 영성이 부족하고, 사람들을 다룰 줄을 몰랐습니다.  매일 교회에서 기도하고 말씀 공부하고, 한글 모르시는 어려운 분들에게는 한글도 가르치며, 열심을 다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물질적으로, 눈에 보이시게 역사 하셨습니다.  남의 오래된 교회 건물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1년 뒤에 건물 주인들이 우리가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있는 줄 알고, 땅과 건물을 $10.00에 팔았다고 이전 등기해 주었습니다. 또한 오래된 건물이라 중앙 에어컨이 없어서, 창문 에어컨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밤에 도둑들이 와서 여러 번 가지고 가서 고민 중에 있을 때, 한 보애스를 우리에게 보내어, 중앙 에어컨 ($6,000.00)을 무료로 달아 주었습니다.

교회 위치가 한국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는 동네가 아니라, 교인들이 팔고 동쪽으로 옮기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즉시 그 건물을 팔게 해 주셨습니다.  제가 가르치던 대학이 있는 한 교회로 임시 거처를 옮기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동쪽에 위치하여 매우 좋은 예배처소 이었지만, 우리들은 자체 건물을 열망하고 있었습니다.  땅을 구입하려 몇 달을 소비하며 다녔지만, 좋은 땅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중국 교회 옆의 산지를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가격이 한 에이커에 $50,000이라 2에이커에 $100,000.00을 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땅 값을 $75,000.00에 제의를 해서 안 되면 $80,000.00까지 올려보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65,000.00에 제의를 하라고해서 얼굴이 뜨거워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진작 복덕방에 나간 저의 제의는 $50,000.00 이였습니다. 저의 입을 의심할 수도 없고, 잘못 말했다고 물릴 수도 없었습니다. 성령님이 저의 입을 막고 있었습니다.  저의 얼굴이 너무나도 뜨거웠습니다.  얼굴이 붉어진 복덕방 주인은 두말도 하지 않고, 알았다고 말을 끊었습니다.  집에 돌아 온 저는 부끄러워 말을 잘 하지도 못했습니다.  다음날 새벽에 모기가 한창 이였지만, 그 땅에서 우리 부부는 무릎을 꿇고 기도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땅이 우리들의 것이 되었다고 복덕방에서 알려 주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한 선교사 부부가 그 땅의 주인이데, 교회를 짓는다고 하니, 승인을 쉽게 하신 것 같습니다.

1999년 7월 3일에 대망의 성전 건축이 시작되었습니다. 2000년3월4일에 입주하였습니다.  아주 작은 3,500 스퀘어 피트의 빌딩이지만, 우리들에게는 천국 이였습니다.  늘어나는 어린이들을 위해 2003년도에 트레일러(Tailor) 하나를 교육관으로 헌당했습니다. 10년 목회 후에 영적으로 갈급함을 느껴, 다시 멤피스 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 과정에서 공부를 더하고 싶어, 2003년에 학교에 들어가 2006년에 하나님이 공부를 잘 마치게 해주셨습니다.  그 뒤 2007년에 본당을 다시 신축하자는 의견과 헌금이 들어와, 7월에 본당 신축 계약을 체결하고, 본당 5,000스퀘어 피트의 본당 신축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평소에 감기 한번 하지 않고 살아온 저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후궁인대 골화증 (Ossification of Posterior Longitudinal Ligament)이 6개의 목뼈 안에 생겨서 2008년 6월6일에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에도, 장기적인 물리치료, 침술, 뜸 그리고 모든 의료기술을 동원하여 치료를 계속했습니다. 2008년 12월21일에 본당에 입주하여 헌당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2009년 5월에 창립15주년을 맞이하여, 그동안의 기쁨과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제 저의 나이 65세, 기정교회 8년, 목회 15년이라, 아마도 은퇴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인줄 믿고 2009년 8월에 담임목사직은 은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 수고 해오던, 우리 교단 한인 목회 총무일과, 신학교 PAS Program에서 가르치는 일이나, 또한 교단 어린이집 재단이사 직을 계속해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슬하에 부인(Ann)과, 아들(Michael)과, 딸(Hannah)이 있으며, 아들 가족에게는 자부 (Ann) 손녀 (Emily & Claire), 손자 (Matthew) 가 있습니다. 실은 저의 손녀 및 손자를 위해 쓴 글입니다.

This is Pastor Yoong S. Kim.

I accepted Jesus Christ as my personal savior in 1960, as a freshman in high school.  I know I have disappointed my Lord, but never betrayed Him even once.  During the eight years of house church and fifteen years as sr. pastor of Korean Church of Memphis, I have experienced His touches all the time during my ministry. God called me to start the Korean Church of Memphis, even though I was not qualified. Whenever I felt I was in want, God’s providence was there. I feel that it would be beneficial for you that I express a few words about myself before you read this book.

I came to United States of America in 1972 to the University of Tennessee as a student. At that time except for a few students, most students from Korea experienced some sort of financial difficulties. Since my family (wife and a son) came to USA, I have worked at a local hospital, at FedEx and have studied at a graduate program at the University of Memphis.  In 1985, I got a long awaited doctorate from University of Memphis (my parents were waiting more than I was). In fits and starts, I studied theology as a part-time student. I did not have a calling in Gospel ministry, but wanted to be a good youth director as I worked with YFC (Youth For Christ) in Korea.

Incidentally, but with the grace of God, I met a wonderful preacher who came from Korea to USA to study theology. We immediately started a house church & Bible study group at my home. We started with as small as 2-3 participants, but grew over to 50 participants. One pastor’s couple who came to my home to participate in our meeting was very thirsty in Spirit. As a return courtesy, I attended his church.  Few years later, this student preacher had to go back to Korea.  At that time, most of the church members left the church, except 4-5 families.  I was the church treasurer, so I told the church members that we need to donate all the available funding to a non-profit organization and close the church. 

One woman told us that she did not have a church to go to.  If she goes to an American church, she would not understand and if she goes to a local Korean church, she would not be respected by the Koreans due to intermarriage. Therefore, since I have been guiding a house church on every Saturday, she asked me to continue Sunday worship. I told her that I never thought about it and could not do it. I felt that God had given me a burdon to take over the Gospel ministry.  I shared with my wife this burdon to carry the torch.  Her comments stunned me.  She said that anyone could be a preacher, but not me. In fact, she knows me better than any one else.  She was absolutely correct, but she said she would pray about it.  A couple of months later, after her praying, she said that if I want to be a tent-making preacher, she said she would support my ministry. She noticed that small immigrant churches always face some sort of financial difficulties. 

Starting a new church with four families was not easy, as I expected.  The problem was that I was a dedicated and enthusiastic pastor, but was lacking in spirituality and did not know how to handle people.  I went to church every day to pray, teach the word of God and teach the Korean language for those who do not know Korean.  I did all I could do without fear. God blessed us visibly and materially.  We had been using an old church building belonging to someone else.  The owners wanted to sell it, but later changed their mind and wanted to donate it to us.  The bill of sale said that they were selling the building and land for only $10.00.  This was a miracle to us.  Also, the old building did not have any central air conditioner, only several window air conditioners.  Then, some theives came and took our window air conditioners.  We did not know what to do, but God sent us a Boaz who installed a central air conditioner ($6,000) without charging a penny.

The location of the building was not favorable to most of church members. Some church members asked to sell the building and move to the Eastern side of the city. We sold the building within a couple of months and moved our worship location to a church/college where I was teaching at night.  However, we really wanted to have our own church building.  We spent several months looking for a piece of land for the Korean Church of Memphis. One day, we found a 2 acres lot next to a Chinese church. It was listed for $100,000.00, $50,000 per acre.

After thorough prayer, I decided to offer $75,000 for the land and then if that was rejected by the owner, I would raise the offer to $80,000.00. Innocently my wife told me to offer $65,000. But I said that it might upset them and I would be ashamed at the very suggestion. But when the sellers and I met, on the spot, I offered $50,000 for the land. I did not realize what I said. The Holy Spirit stopped me to change my offer, but my face turned red and I was ashamed to look at the realtor. She said a short answer that I understood. Next early morning, my wife and I went to the hilly land, knelt down, and prayed. A column of swarming mosquitoes did not bother our sincere prayers to the Lord. A phone call came within several hours of the prayer; the realtor said the land was ours. That was an impossible deal. Later on, I found out that the land had belonged to a retired missionary. She approved our offer after she knew that the land would have a church for the Lord.

On July 3, 1999, the long waited construction for a multi-purpose building started.  We were able to move in on March 4, 2000. It was a small, 3,500 square feet building, but it was heaven to us. Due to an increasing number of children, we purchased a trailer as an education building.  After 10 years of pastoring, I felt spiritual thirsty, and with congregational approval, I was admitted to a Doctor of Ministry program at Memphis Theological Seminary and, with the grace of God, completed the degree course in 2006. In 2007, some members wanted to build a big sanctuary and offered offerings for the building.  In July 2007, we started to build a 5,000 square feet sanctuary.

At this time, I was experiencing some numbness in my both hands.  What was the matter with me? I was diagnosed Ossification of Posterior Longitudinal Ligament. I was very healthy had not even had a cold for 20+ years.  On June 6, 2008, I had a Posterior Cervical Fusion from C2-C7. I was in the hospital for a month and had physical therapy for 8 months, acupuncture, moxibustion and all possible medical treatments. On December 21, 2008, we were able to dedicate the new sanctuary. We celebrated the 15th anniversaty on May 24, 2009 and thanked God for His guidance and blessing.

It was the time for me to retire from the position of the pastor from the Korean Chruch of Memphis. I am 65 years old, with 8 years of house church and 15 years of pastoring. However, I plan to continue to work for General Assembly of Cumberland Presbyterian, Board of Missions, Korean Consultant, Memphis Theological Seminary, PAS program instructor for Korean Pastors and serve on a board of trustees for CP Children’s Home.

I have my wife, Ann, son Michael and daughter Hannah. In the family of my son, Michael has his wife Ann, daughters Emily and Claire, and son Matthew.  This is written for my grand daughters and my grandson.